티베트인들에 따르면, 일반 대중을 위한 싱잉볼의 인기는 1959년 중국 인민해방군의 티베트 군사 점령 이후에 생겨났으며, 이로 인해 많은 티베트인들이 네팔, 인도, 부탄을 포함한 인근 국가로 피난을 떠났다.

현대의 싱잉볼의 전파는 도망치는 티베트 난민들과 함께 나왔다. 수도사와 승녀들은 종교 박해를 피해 도망치는 동안 가장 소중한 물건을 등에 업고 다녔다. 그 당시 수많은 수도원, 사리탑, 성지가 불에 타 약탈당했다. 부처님과 보살의 동상과 신들이 파괴되었다. 싱잉볼과 기타 귀중한 소지품을 포함한 의식 용품을 압수한 것이 널리 기록되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즉각적인 부가적인 피해를 가져왔다.

" 티베트 지역의 근본적인 사회적 기반이 뿌리째 뽑혔다."
'이 지역의 근본적인 사회적 기반'은 뿌리째 뽑혔다. 많은 고대 경전과 그 혈통이 혼합되어 사라졌다. 일부는 불에 탔고, 일부는 묻혔으며 일부는 분실된 채로 남아 있다. 이러한 참혹함으로 인해 싱잉볼에 대한 이야기는 대중이 비밀 종교 의식과 권한에 대해 처음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다시 활기를 찾았다. 그 이전에는 일반 티베트인 중 싱잉볼을 들어본 사람이 많지 않았다.

도망친 난민들은 등에 짊어질 수 있는 것을 들고 걸어서 히말라야를 건넜다. 수많은 난민들이 빙하 위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일부 난민들은 위험한 산길을 나아가기 위해 소지품을 버렸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이웃 나라로 이주하는데 성공했다. 미지의 땅에서 새로운 삶을 재건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가장 소중한 재산을 식량과 교환해야 했다. 그래서 싱잉볼은 현지인들에게 전해지는 물건이었다. 이런 식으로 금속과 고대의 가치를 지닌 물건들은 티베트의 구슬, 산호, 청록색 보석과 함께 이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싱잉볼의 서구 세계로의 여정은 1970년대 초에 시작되었다. 그 인기는 동방 세계의 평화와 평온을 추구하는 여행자와 영적주의자들을 통해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티베트 싱잉볼은 영적인 의식 대상에서 전체적인 치료 대상으로 바뀌었다. 높은 수요로 인해 히말라야 지역 주변에는 특히 네팔과 인도에서 많은 금속 장인들이 등장했다. 이러한 장인들은 전통적인 티베트인들보다 더 숙련된 경우가 많았고 상업화 덕분에 에칭과 장식이 크게 개선되었다. 그래서 이제 이 싱잉볼은 종종 히말라야 싱잉볼이라고 불린다.

요즘 과학계의 많은 사람들도 이 금속 그릇에 흥미를 느끼고 있으며, 수많은 실험이 수행되고 가설이 도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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